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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외국영화

[인터스텔라] 인류의 시작과 끝을 연결하는 믿음



* Review를 작성하다보면 은연중에 스포일러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영화 리뷰는 영화를 다 보시고 난 후 공유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1) 들어가기 전에

 

역시 대단하다는 말 밖에 할 수가 없었다.. 놀란 형제는 정말 최고..

 

이 영화는 다들 알다시피 시간과 공간의 이야기와 인류의 생존문제를 결합시킨 영화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중력에 대한 이해가 어느정도 필요한 영화다.

 

상대성이론이란, 시간은 상대적인 것이어서 장소에 따라서 다르게 흐른다. 지구에서는 일반적으로 시간이 똑같은 간격으로 흐르기에 모두 시간을 절대적이라고 믿지만, 시간은 시간이 존재하는 공간의 특성에 따라 (중력의 영향) 더 빠르게 혹은 더 느리게 흐른다.

 

중력 역시 "지구"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는 일정하게 존재하므로, 중력이란 것이 우리와 함께 존재한다. 라고 믿기 쉽지만, 중력은 시간과 공간에 영향을 받지 않는 초월적인 힘 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지구에 일정하게 미치는 중력은 시간이 흘러도 변화하지 않으며 공간에 따라서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나아가 시간과 공간의 왜곡 속에서도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힘이 바로 중력인 것이다. (물론 중력의 세기는 달라지지만, 중력의 영향력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해, 중력 자체가 시공간을 초월해 존재함으로써 이 공간과 저 공간, 지금 이 시간과 미래의 저 시간이 중력을 통해 만나게 되는 것이다. 블랙홀 이라는 중력 덩어리 속에서 시간은 멈춰있고 공간은 거대한 중력의 힘으로 인해 구부러지고 이리저리 교차함으로써 이질적인 시공간이 만나게 되는 것이다.

 

(저는 물리학자는 당연히 아니고, 물리학과도 아니고 그냥 인문학전공 학생입니다.. 개념은 영화를 보면서 이해한대로 적어 보았어요 도움이 될까봐.. 틀렸다면 죄송합니다. 네이버캐스트에 상대성이론 등 물리이론에 관련해 자료들이 많이있으니 네이버캐스트를 통해서 좀 더 전문적인 지식을 찾는 편이 더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2. 불의 발견

 

인류의 시작은 다들 알다시피, 불의 발견과 함께 시작한다. 불의 발견은 인간의 시작이라고 정의 할 수 있다. 또 한, 불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역사 속에서 전쟁활동을 통한 정복과정에서는 항상 불이 등장한다. 전쟁을 통해 어느 종족은 발전을 이루지만, 그 전쟁의 화염 속에서 다른 종족, 민족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한편, 식량의 문제도 이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데, 역사의 시작은 정확하게 말하면 식량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영화에서는 식량이 부족해진 시대에, 더 이상 쓸모 없게 된 실패한 농작물들을 태우는 작업을 통해, 인류에게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한다. 마지막 남은 옥수수의 경작마저 실패하는 후반부의 장면은 절체절명의 위기가 다가왔음을 암시한다.

 

하지만 놀란은 "인류의 종말에의 접근"이라는 의도와 또 다른 생각을 전달하려고 했던 것 같다. 바로 마지막 옥수수밭을 태우는 장면 과 함께 '인류의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태초의 발견, 블랙홀 내부로의 진입과정에서 수 많은 불꽃에 휩싸인다. 이 장면은 교묘하게 종말을 알리는 장면과 오버랩 되며, "인류의 끝이 새로운 시작과 맞닿아 있다."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리고는 정말 거짓말 처럼 새로운 시작을 맞는다. 그 새로운 공간에서 어떤 시작을 맞이할 지는 모르지만 "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놀란은 시작과 끝의 의미를 강하게 연결시킴으로써 희망을 노래하고 싶었던 것 같다.

 

 

3. 가족과 인류애

 

가족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가장 "근원의 힘"이다. 그리고 이런 가족을 이루는 근간이 되는 감정은 바로 "사랑"이다. 사랑의 힘은 영화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딸을 위해서, 나아가 인류를 위해서 떠나가는 아버지, 떠나간 아버지를 원망하지만 아버지가 돌아올 것을 강하게 믿으며 인류를 구해내는 딸. 그리고 아버지의 실패에 굴하지 않고 새로운 지구를 개척하는 파이오니어 딸. 이 모두의 원동력은 바로 가족 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런 사랑의 힘은 인류를 구원하고 새로운 시작을 이루게 한다.

 

자신의 온 몸을 블랙홀 속으로 내던지는 모습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전체의 가장 근원적이고 순수한 사랑과 희생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 스스로를 구하고자 하기보다, 나를 남들보다 먼저 생각하기보다, 우리 다 함께 생각하고, 희생을 통한 노력이 뒷받침 될 때 사회는 새로운 도약을 내딛을 수 있는 것이다.

 

영화에 이런 사랑에 위배되는 정반대의 인물이 등장하는데(맷 데이먼), 그는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치밀하게 준비해 왔으나, 결국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었다. 하지만 이런 정반대의 인물은 역설적이게도 주인공에게 사랑의 의미, "네가 살아있기에, 나는 죽어도 죽을 수 없다"는 의미를 직접 전달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자신의 최후를 더욱 비극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것"과 "몰라도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실천하는 것"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 아마 답은 정해져 있지만 우리가 선택할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을 것이고, 누군가는 몰라도 실천하는 것이 사랑이기에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인간"일 수 밖에 없고 신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신이 될 수 없기에, 스스로를 버리는 무모한 선택과 이를 통해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것 또한 "인간"의 특권이 아닐까.

 

 

4. 구원과 자아성찰, 나르시시즘

 

구원이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맷 데이먼은 인류의 구원이라는 중차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스스로 죽음까지도 각오하면서 우주로 향했다. 하지만, 우주는 인간 하나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거대했으며, 미지로 둘러싸인 세계였다. 그 속에서 맷 데이먼은 자아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희망의 끈을 놓았다가도 다시 붙잡기를 반복하면서 이미 정신은 너무나 쇠약해졌고, 스스로 인류를 구하기 위해 예수님이 지상에 내려오신 것 처럼 우주를 향한 인간은 구원이라는 믿음 보다는 스스로의 행동을 비상식적으로 믿게 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신이 존재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너무 스스로에 빠진 탓에 "나를 구할 사람은 나 뿐"이라는 오만한 생각은 그를 파멸로 몰아 넣었다. 브랜든 박사가 인정하는 그렇게 유능했고, 희생정신 또한 투철했던 박사가 도킹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 해치를 열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정말 몰랐을까.

그렇다기보다는, 내가 지금껏 이 광활한 우주에 맞서 왔기에, 그리고 살아남았기에 스스로가 죽음의 문을 열고 들어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구원을 원하며 신을 찾는다. 어느 종교든 궁극적인 목표는 구원이기에 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종교에서 "신은 내 안에 있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이는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내 안에 하느님이, 예수님이, 부처님이 있기에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배려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 안의 신과 나를 동일시 하게 됨으로써 오만에 빠지게 되고 순수와 방향성을 잃어버리는 순간 내 안의 나는 더 이상 신이 아닌, 내 멋대로의 생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인류를 구원하기위해 내려오신 예수님이 하느님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스스로를 하느님이라 생각했다면,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희생을 감당하시려 하셨을까? 예수님 스스로가 하느님을 믿으며 나르시시즘에 빠지지 않았기에 희생을 통한 구원이 가능했던 것이다.

 

 

5. 새로운 차원과 미래

 

블랙홀은 조개, 그 속의 진주. 3시간이라는 길다면 길 수도 있는 영화 속에서 두시간 반 정도는 실제 이론에 기반한 그리고 여러가지 복합적인 우리의 고민들에 대해 말해왔다면 마지막 30분 정도는 미래를 보여주었다고 본다.

아무도 갈 수 없었고 지금도 갈 수 없는 블랙홀 그 속에 존재하는 5차원이라는 시공간에 중력마저도 거스르는 공간을 지나 미지의 두 장소에 맥커너히와 앤 해서웨이는 각각 도착해 임무를 마쳤다.

맥커너히가 도착한 곳은 이미 인류가 뿌리를 내리고 자생하기 시작했고, 해서웨이의 그 곳은 이제 막 시작하려 한다. 맥커너히는 해서웨이에게 가는데 이는 인류의 시작 아담과 이브, 그리고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인류의 미래는 상상속의 것 이지만, 시간과 공간만 다를 뿐, 중력의 영향력만 다를 뿐, 야구를 즐기는 모습, 그리고 사랑하는 모습은 지금과도 같았다. 어쩌면 겉은 변화하더라도 본질은 변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고 그렇기에 인류의 미래는 무궁무진 한 것이 아닐까.